AI 기업들이 너도나도 세리프 폰트 채택하는 이유, 차가운 AI에 인간미 입히기
AI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AI가 만든 결과물의 흔적을 찾아내 거부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것은 em 대시 같은 문장부호와 '세 개로 묶기' 리듬, '~가 아니라 ~다' 식의 어색한 구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특정 서체, 그중에서도 세리프(serif·획 끝에 작은 돌출 장식이 달린 글꼴)가 AI를 규정하고 드러내는 신호로 지목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tasteslop(취향 슬롭)'이라 부른다. 생성형 AI 디자인을 피상적으로 세련되고 품위 있어 보이게 만들려는 시도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작가이자 디자이너, 타입 실무자인 케야 바드가마는 이런 흐름을 '세리프 르네상스'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자신의 서브스택 뉴스레터에서 이 움직임이 기업들이 '개성과 따뜻함'을 드러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바드가마는 "AI 네이티브 기업들이 특히 세리프에 끌리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AI는 본질적으로 차갑고 의견이 없기 때문"이라며 "세리프를 쓰는 것은 '우리는 AI지만 진짜 인간이 우리 제품을 쓰고, 또 만들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세리프가 캘리그래피에 기원을 두고 있어 매우 인간적이고 유려하게 글자를 만드는 방식을 연상시킨다고 덧붙였다.
바드가마에 따르면 앤스로픽의 클로드는 세리프를 기본 서체로 사용하고 있으며, 런웨이·퍼플렉시티·마누스 등 다른 AI 기업들도 UX와 브랜딩에 비슷한 서체를 채택했다. 퍼플렉시티의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 제시 드와이어는 와이어드에 "우리가 왜 인간적인 디자인을 하지 않겠나. 퍼플렉시티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세리프 선택은 미학만큼이나 사용자와 브랜드 사이의 신뢰를 쌓는 일과 관련이 있다. 산세리프 계열인 아리알·칼리브리·헬베티카는 너무 깔끔해 컴퓨터처럼 느껴지는 반면, 타임스 뉴 로먼 같은 서체는 더 위엄 있게 다가온다. 타임스 뉴 로먼은 1930년대 영국 더 타임스 신문이 의뢰해 만든 서체로, 책과 신문 인쇄에 쓰이며 화면으로 글을 읽기 이전 수십 년간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이 서체로 조판됐다.
토론토 온타리오 예술디자인대학의 그래픽디자인 학과장 알리 S. 카디르는 "넓은 대중에게 세리프는 학식의 함의를 지닌다"며 "클로드가 흥미로운데, 약간 갈색 배경을 써서 책 페이지를 흉내 내고 인쇄물을 읽는 느낌을 모방한다. 인쇄물은 신뢰와 더 깊이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도 타임스 뉴 로먼으로 돌아갔는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칼리브리를 '비격식적'이라고 비판한 뒤였다.
다만 모두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이자 창업자인 이통 장은 세리프로의 전환을 X에서 '저주받았다'고 표현하면서도, 특별히 교활하거나 사악한 징조로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 연구소들의 누군가가 모델을 디자인에 능숙하게 만들려는 것이고, 꽤 실용적인 일"이라며 현재의 AI를 여러 폰트를 내려받아 실험하는 십대에 비유했다.
클로드 자신도 세리프로 바꾼 이유를 묻자 신뢰와 권위, '문학적 진지함'을 언급하면서 '과도한 차용'과 무리 본능도 함께 인정했다. 클로드는 "깨끗한 선과 유려한 애니메이션, 확신에 찬 타이포그래피는 모두 '이 시스템은 자기가 뭘 하는지 안다'고 전달한다. 이런 미학은 AI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오히려 반하게 작동한다"고 답했다.
바드가마는 결국 한계를 짚는다. "세리프로 '우리는 그 무서운 AI 기업이 아니다'라고 신호하려는 데에는 다소 부정직한 면이 있다. 실제로는 여전히 AI 기업이기 때문"이라며 "코믹 산스를 써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AI 기업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